오래된 생각의 결론.

돈은 시간을 사고 시간은 기회를 사고 기회는 돈을 사지.

선순환을 만들었다면 게임은 끝난거야.


그래서 돈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이야.

그 과정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아직 할 수 있다고 믿어. 최선을 다하면 세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자.


불확실성을 이기는 힘 저널


글 ㅣ 최인아 국내부문장·부사장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다중지능 이론을 주창했지요. 기존의 문화는 지능을 너무 좁게 IQ 한 가지로 해석했는데, 사실은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다수의 능력이 인간의 지능을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가드너는 여덟 가지 지능을 이야기했는데요, 그의 주장은 개인의 역량을 다양하게 발굴하고 육성하는 교육으로 연결되어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드너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능이 높은 것으로 치지 않았던 신체 운동 능력이나 대인관계, 시각·공간적 능력 모두가 지능이랍니다. 지금껏 우리는 운동 잘하는 사람에게 그저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고 했지 머리가 좋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운동 못하는 사람은 그저 운동 신경이 둔하다고 생각했지 머리 나쁜 탓은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그런데 가드너의 주장을 대하고 나니 앞으론 그런 위안도 삼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는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감정 콘트롤이 잘 안 되는 사람도 그냥 까다롭거나 예민한 게 아니라 그 방면의 지능이 낮은 거였습니다. 한 마디로 머리가 나쁜 거였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저 자신부터 뜨끔해집니다만.

저는 가드너가 말한 여덟 가지 영역의 지능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불확실성을 이기는 능력이랄까요. 여러분은 혹시, 이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이 소수인 이유가 무엇인지, 퍼포먼스가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젊은 시절의 저는 그 사람의 능력, 재능 같은 걸 주로 보았습니다. 퍼포먼스는 곧 능력으로 이해했죠. 한데 세월이 갈수록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시작하네요. 특히나 요즘은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 같은게 점점 더 커 보입니다.

우리는 큰 맘 먹고 영어 공부나 운동을 시작합니다. 한데 시간이 좀 지나면 처음 시작할 때의 굳은 마음은 어디로 가 버리고 슬슬 딴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계속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하죠.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 더 한다고 한들 될 것 같지가 않다는. 이 단계에서 여러 사람이 그만둡니다. 저 또한 많이 그랬고요.

한데 이런 게 혹시‘자연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단단하고 충실한 소수를 가려내는 우주의 메커니즘 말이죠. 마음이 물러 불확실성 앞에서 쉽게 흔들리는 사람을 걸러내는 메커니즘 말예요. 해도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곧 애쓴다고 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고 결국 불확실성에 대한 회의입니다. 불확실성을 못 견디는 겁니다. 하긴, 투자에 있어서도 악재보다 나쁜 게 불확실성이라고 하니, 노력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 불확실성이야말로 보통의 우리들에겐 가장 넘어서기 어려운 봉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하루 공부하면 하루만큼 발전이 있고 한 달해서 한 달만큼 진전이 있다면 세상에 중도 탈락자란 있을 리 없을 겁니다.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 세상 모든 퍼포먼스는 오랫동안의 진전 없음과 그로 인한 불안한 대면을 이겨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며, 가능성은 거의 포기하려는 직전에야 반짝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그 달콤함에 용기를 얻어 공부와 연습을 계속해 봅니다만, 그렇다고 그 상태가 길게 가는 것도 아니에요. 회의는 몇 번씩 끈질기게 찾아 오고 심지어는 이전만도 못한 상태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제 골프가 요즘 이런 상태인데요, 반짝하더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겁니다. 집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열 두 번도 더 듭니다만, 조금 더 견뎌 보기로 했습니다. 이치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아 낙오자가 되기는 싫으니까요.

우리는 확실한 보장을 원합니다만, 인간이 하는 일에 보장 같은 건 없는 듯합니다. 세상사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에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퍼포먼스를 내려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강을 의연하게 건너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 그 유혹에 지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승리자들에게 공통된 능력이며 이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능일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IQ보다 윗단의 중요한 지능일지도 모르겠어요.

엊그제 기사를 보니까 올 6월 전국의 최고 기온은 평균 27.8℃로 체계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여름은 이제부터 시작이잖아요. 올 여름엔 특히 더 무더위에 견디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네요. 보양식이라도 하시면서 씩씩하게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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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글을 이제서야 보았는지 스스로에게 안타까울 만큼 좋은 글이다.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지만 소위 '성과'를 내고 사회적인 위치에서의 성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충족시켜주는 삶을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묵묵히 나아간 이들었다. 그들이 똑똑하냐 묻는다면, 지켜본 바로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일부분에서는 입이 무겁고 진중하다는 것이다. 사생활을 모두 공개하지 않고 죽마고우여도 공과 사가 구별되는 느낌을 주지만 그것으로 서운한 기분이 들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우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역량들이 있었다.

취업을 준비했을 때 나는 많은 생리를 보았다.
면접을 20여번쯤 볼 때에는 저 사람은 영업, 저 사람은 총무직, 저 사람은 재무?..., 저 사람은...해외영업이구나...
다 보였다.  역시나 대부분 틀리지 않았고, 면접을 보고 나서 합격 여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고 어느새 나는 내가 봐도 사회적으로 내게 맞는 곳에 있었다.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시간을 죽이는 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결국은 죽이지 않고는 스스로를 버티지 못하게 만드는 곳이 직장이란 기분이 들었다.
1.5명의 월급을 받고 2명의 일을 하는 곳이 기업이었다. 
동기는 입사와 동시에 고과의 경쟁자가 된다.
스마트폰은 유일한 낙이었다. 차트에 울고 웃는 것이 하루의 운을 점칠 즈음은 차라리 행복했다. 일은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4년제에 자격증이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한국에선 신기하리만큼 미국식 교육을 받지만, 현장에서 맞닥들이는 것은 아무리 큰 기업이어도 그 영세하고 척박한 환경이었다. 미국에선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그만큼 작은 사람이었다.
대신, 차라리 내게 일은 대인관계 업무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조직을 고르는 기준은 업무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나 그 무엇이든 어떤 것이 일이 되는 순간, 재미없다. 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룹의 일원이기에 그룹에 따라야 했다. 군대 문화가 가득하고 유교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차라리 정신 노동에 가깝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일을 고르는 유일한 기준은 준거집단을 고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라면 이런 이들과 삶을 말그대로 영위하며 아름답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혼자가 되어야 했다. 허나 그 준거집단이 과연 나를 좋아할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이젠 관심도 없다. 그 준거집단에서 나는 다시 내 조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만약 준거집단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1년이었다.
왜 나의 존경하는 선배와 친구들이 모두 스스로 혼자가 되어 갔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영혼을 지키기 위해 지불할 것이 노력인 것에는 차라리 감사한다.

숫자 넘어서의 세상엔 영혼이 있다.
확률을 논하지 말고, 얼만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꿈의 크기가 큰지 이야기하자.
그리고 그런 이를 만나서 사랑을 하자.

2012년 1월 1일.

 

그대, 한 점에서라도 덕을 보고 있는가? 부동산





파란색 : 2010년 매출10조원 이상 기업(2011자료는 미집계)

삼성전자 수원 영통구
SK이노베이션 종로구 태평로
한국전력공사 강남구 영동대로
현대자동차 서초 양재동
GS칼텍스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포스코 포항시 남구
엘지전자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타워
JP모건체이스은행서울지점 중구 
BNP파리바은행 중구
우리은행 중구 회현동2가
삼성생명보험 중구 태평로2가
엘지디스플레이 영등포구 여의도동 트윈타워
에스케이네트웍스 중구 을지로
기아자동차 서초구 양재동
신한은행 중구 남대문로4가
한국가스공사 성남시 분당구 돌마로
현대중공업 울산광역시 동구
국민은행 남대문로2가
에쓰오일 마포구 공덕동
케이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농협중앙회 중구 충정로1가 
sc제일은행 중구 공평동
중소기업은행 중구 을지로2가 
하나은행 중구 을지로1가
아이엔지은행서울지점  중구 을지로1가
KDB산업은행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화학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우인터네셔널 중구 남대문로5가
바클레이즈은행서울지점 서초구 서초동
현대모비스 강남구 역삼1동
롯데쇼핑 중구 소공동
현대오일뱅크 중구 남대문로5가
삼성화재해상보험 중구 을지로1가
삼성중공업 서초구 삼성서초타워
삼성물산 서초구 삼성서초타워
에스케이텔레콤 중구 을지로2가 SK타워
교보생명보험 종로구 종로1가 교보빌딩
한국외환은행 중구 을지로2가 
대한생명보험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화63시티
대우조선해양 중구 다동
한국씨티은행 중구 청계천로
하이닉스 경기도 이천시
대한한공 강서구 공항동
한국토지주택공사 성남시 분당구
에스엘시디 충남 아산시
신세계 중구 충무로1가
뱅크오브아메리카서울지점 중구 장교1동
도이치은행서울지점 중구 서린동
현대제철 인천동구 
현대건설 종로구 계동


똥색 : 1등급 병원

가톨릭대서울성모
가톨릭대성모
경희대
고대안암
고대구로
삼성서울
강북삼성
서울대
서울아산
순천향
세브란스
강남세브란스
이대목동
인제대상계백
서울백
중앙대
한양대


빨간색 : 학생수 1만 이상 대학

명지대 서대문구 거북골로
이화여대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광운대 노원구 광운로
국민대 성북구 정릉로
세종대 광진구 군자동
숭실대 동작구 상도로
성신여대 성북구 보문로
숙명여대 용산구 청파로
고려대 성북구 안암로
한성대 성북구 삼선교로
한양대 성동구 왕십리로
건국대 광진구 능동로
경희대 동대문구 경희대로
서강대 마포구 백범로
성균관대 종로구 성균관로
중앙대 동작구 흑석로
홍익대 마포구 와우산로
연세대 서대문구 연세로
서울대 관악구 관악로
한국외대 동대문구 이문로
서울시립대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동국대 중구 필동로


검은색 : 법원

대법원 서초구 우면로
고법 서초구 우면로
중앙지법 서초구 우면로
동부지법 광진구 아차산로
남부지법 양천구 신월로
북부지법 도봉구 마들로
서부지법 마포구 마포로
가정법원 서초구 서초중앙로
행정법원 서초구 우면로


보라색 : 메이저 언론사

MBC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영등포구 여의도동
SBS 양천구 목1동
조선일보 중구 태평로1가
중앙일보 중구 순화동
동아일보 종로구 세종대로


초록색 : 정부부처, 의회

국회의사당 영등포구 여의도동
청와대 종로구 청와대로
서울시청 중구 덕수궁길
기획재정부 과천 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 종로구 세종대로
외교통상부 종로구 사직로길 
통일부종로구 세종대로
법무부 과천 중앙청사
국방부 용산구 용산3가
행정안전부 종로구 세종대로
문화체육관광부 종로구 와룡동
농림수산식품부 과천 중앙청사
지식경제부 과천 중앙청사
보건복지부 종로구 게동
환경부 과천 중앙청사
고용노동부 과천 중앙청사
여성가족부 종로 무교동
국토해양부 과천 중앙청사


바로 이거야! Wishlist

왜 나는 집중하지 못하는가

[해외신간 서평3]

2011년 01월 31일

 

The Shallows :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by Nicholas Carr W. W. Norton & Company (2010)


일반적으로 인간은 대단히 깊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표면에 머물고자 한다. 왜냐하면 표면이란 것은 보다 적은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바실리 칸딘스키

얼마 전 기자는 컴퓨터의 홈페이지를 네이버에서 구글로 바꿨다. 포털 점유율 65%인 네이버 대신 5%인 구글을 택한 건 구글 홈피에는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랬다. 기사를 쓰다가 뭔가를 확인하려고 네이버에 들어가 검색창에 단어를 치다보면 아래와 같은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女탤런트, 연평도 주민위해 1억 ‘통큰기부’’
‘누구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기자는 결국 마우스로 손이 간다. (역시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해 밝히면 女탤런트는 하유미 씨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문득 드는 생각.

‘그런데 내가 여기 왜 들어왔지…?’

한참을 고민해도 모르겠다. 찜찜한 마음으로 사이트를 닫고 다시 기사로 돌아온다. 좀 전에 쓰고 있던 부분을 멍하니 읽다가 자책을 한다.

‘이걸 확인하려고 했었지…. 바보같이.’

결국 네이버의 유혹을 극복할 수 없는 나약한 의지에 대한 극약처방으로 선택한 게 ‘눈 돌릴 데가 전혀 없는’ 구글사이트였다.

검색창 외에 눈 갈 곳이 없는 구글사이트. 그러나 저자는 구글의 검색 시스템 역시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책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

사실 기자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즉 문제의식을 갖고 뭔가 해결책을 강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바로 이 책 ‘The Shallows’를 읽게 되면서 부터다. ‘얕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넷이 우리 뇌에게 무슨 짓을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터넷이 뇌의 회로를 바꿔 결국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아버린다는 것.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의 본질이 우리가 어떤 생각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IT 분야가 전문인 저널리스트다. 그는 이 책에서 IT의 눈부신 발달의 결과인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넘쳐나는 정보가 오히려 인간의 지성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즉 정보와 지식은 다르다는 것.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정보×이해=지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뭔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2=3, 2+3=5를 통해 3+6의 값을 안 다면 그는 덧셈이란 연산을 이해한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측면 뿐 아니라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도 몸이(엄밀히는 뇌가) 자전거 타는 법을 이해한 것이다. 즉 뭔가를 이해했다는 것은 우리 뇌가 어떤 과제를 처리할 수 있는 회로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저자는 수십만 년 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불과 1만여년 전부터 문명화를 이룬 게 문자와 숫자의 발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기호를 익히고 능숙해지는 건 본능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 수렵채취인인 인간은 끊임없이 주위 상황을 탐색하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산다는 본능을 갖고 있을 뿐 차분하게 앉아 추상적인 글자에 매달려 있을 체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500여 년 전 인쇄술이 보편화되면서 책이 확산되고 그 결과 인류 지식의 대폭발이 일어나 오늘에 이르렀다고.

비록 본능엔 반하지만 필요에 의해(문화적 압력) 독서를 하다보면 뇌에 독서회로가 구축돼 저항이 약해진다는 것. 그런데 50여 년 전 TV가 등장하면서 독서에 기반을 둔 인간지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21세기 들어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인터넷 노마드

저자가 인터넷을 염려하는 건 인터넷이 어떤 매체보다도 인류의 ‘본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즉 사바나를 누비며 사냥과 채취를 해온 인류의 피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검색하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추적해가는 인터넷의 양식에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문제는 인터넷에는 ‘사냥감’이 너무 많다는 것.

작은 물고기가 떼를 이루면 상어가 뭘 먹어야할지 결정하지 못해 당황하듯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데이터)가 쏟아지는 인터넷 사냥터를 누비는 인간은 정보의 범람에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건 인터넷 서핑 같은 정보수집 활동에 뇌를 소진할 경우 독서 같은 지식 습득 활동에 할애할 회로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

즉 우리 뇌는 용량이 무한하지 않을뿐더러 컴퓨터의 메모리(램)에 해당하는 ‘작업 기억’의 용량은 더 보잘 것 없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 일을 동시에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들 다수는 이런 ‘멀티데스킹’이 일상화됐고 그 결과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쓰는데 투자하면서도 오히려 하루가 저물 때 손에 움켜쥔 모래가 빠져 나가듯 입력한 다양한 정보가 사라져 버리는 초라한 결과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능에 반하는 지성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2007년 말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집중할 수 없어 한 동안 일이 진척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트위터 계정도 끊고 블로그도 닫고 이메일 어플도 숨겨뒀다고 한다. 그 결과 책을 쓸 수 있는 집중력을 회복할 수(즉 뇌의 회로를 재구축할 수) 있었고 2009년 말 책을 완성했다고.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벌써 옛날로 돌아갔다. 새로운 SNS에 가입했고 와이파이가 내장된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샀다. (중략) 고백하지만 이건 너무 멋지다. 이런 것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철학 빈곤의 시대,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개념기사

철학 빈곤의 시대,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by 비전 디자이너 | 2011.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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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20일 대통령의 첫 라디오, 인터넷 연설의 주제는 ‘G20 세대’였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쌓은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요지였다. 연설 내용 가운데 G20 세대 중에서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20대 글로벌 기업 창업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정부 지원 벤처 융성론’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인 마크 주커버그가 과연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한 인물인가가 의문시되었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정부로부터 사무 공간을 임대받고, 경영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받는 벤처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1인 기업가인가?

이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구글의 검색엔진과 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크와 같이 시장을 뒤흔드는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을 생각해 보자. 과연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도 마크 주커버그가 있었다는 것이다. 1999년 9월 이동형 대표는 형용준, 정태석씨 등 6인과 싸이월드를 창업한다. 싸이월드는 2004년 2월 런칭한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보다 약 4년은 더 시대를 앞선 서비스였다. 당시 급증한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몰려든 인구가 아파트 주민으로 수용됐듯이, 자연스럽게 싸이월드 고객이 됐다. 인터넷화는 곧 싸이월드화였고, 싸이월드는 대한민국의 ‘국민 인터넷 서비스’였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이들 창업자들의 빈한한 초창기와 주커버그의 탄탄한 성공 가도와의 큰 차이다. 작년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극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주목을 받은 주커버그는 초기에 충분한 벤처 자금을 받아 기록적인 속도로 성장한 기업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싸이월드가 혁신적 서비스를 창조한 결과는 그 인기와 맞물려 증가한 빚더미다. 여타의 신사업들이 그렇듯이,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히 세워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관리, 유지, 보수하는 비용 자체가 곧 적자였다. 결국 싸이월드는 17억원이나 되는 빚에 시달리다가 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국내 대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에 서비스를 매각한다. 기술과 서비스의 차이를 넘은 투자의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서로 다른 운명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들 투자를 만드는 배경의 어떤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간의 운명을 가른 것인가. 그리고 정부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이 투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에 정부의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관련된 문제의 뿌리를 생각하기 위해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인터넷이 사이버 대항해 시대를 열기 전에 있었던 기술 혁신에 의한 모험과 정복의 본류, 유럽 근대의 대항해 시대로 돌아가보자.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있었던 유럽의 대항해 시대, 그들의 부의 근본이 된 항해, 식민지 개척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해상왕자 앙리케부터다. 그는 미개척지인 보자도르곳에 포르투갈 선원들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선박 개조, 지도 제작 등 각종 항해에 관련된 실질적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 결과 그의 꿈은 그 이후 세대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크로스토퍼 콜럼버스,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등과 같은 인물들은 유럽의 지도를 바꿨고, 그들의 발견은 유럽의 근대사를 인류의 미래로 확장시켰다.

동시에 이 위대한 대항해의 후원자와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은 16, 17세기 유럽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신적 권위, 인간적 권위를 넘어서 무엇보다도 실험과 관찰을 동반한 이성을 강조한 베이컨의 영향은 지도 밖의 암흑 세계를 공포의 대상에서 적극적 탐험의 대상으로 바꿨다. 콜럼버스의 도전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을 앙리케 왕자가 제공해 주었다면, 그를 위한 정신적, 사상적 기반은 베이컨 등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인들이 제공했다. 그들은 전문가들의 지식을 답습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 철학관을 전복하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혁신과 창조의 가치를 격상시켰다.

이 대항해 시대와 극적으로 상반되는 예가 14~15세기 중국 명나라에 있다. 영락제의 명령을 받아 남해에 일곱 차례 원정을 떠났던 환관이자 장군인 정화는 그의 함대를 동남아,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보낸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유럽의 대항해 시대보다 70년이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은 명나라의 조공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그쳤다. 이후 유교 관료들의 반발로 더 이상 원정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당대의 명나라는 선박 제조술, 항해법 등 기술적 기반에서 유럽에 비해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의 부재가 결국 대항해를 개막하는 영광을 유럽에게 양보하게 했다.

이 수백년 전의 대항해 시대가 오늘날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주는 시사점은 간결하다. 해당 기술에 투자하는 정책적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비록 우리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초기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그 공통점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싸이월드는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대기업에 매각이 되었지만, 페이스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가치 59조에 머잖아 더 큰 기업 가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싸이월드가, 크게는, 소셜 네트워크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 좀 더 크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시대에 던지는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 평가의 기준은 당장의 투자 이익 회수인가 아니면 잠재적인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인가?

과거 전신, 전화, 라디오, TV, 영화, 케이블, 인터넷 그 어느 미디어 중에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마르코니는 전신을 선박들이 안개 속에서 통신을 하기 위해서 개발했다. 안토니오 모치는 상호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 명령을 염두에 두고 전화를 만들었다.(편집자 주 : 그레험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는 기존 사실은 지난 2002년 미 의회에서 안토니오 모치로 바로 잡혔다.) 안토니오 모치는 모바일에서 문자 기능이 모바일 문화의 핵심적 문화를 차지할 줄은 초기 GSM 기술 표준이 제정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나중에 사용된 비즈니스 모델은 개발자들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창조한 것이었다. 그처럼 이용자들에 의해서 해당 기술이 관심과 흥미를 받게 된 후에도, 라디오와 TV의 경우는 RCA의 사코프, 영화의 경우는 파라마운트의 아돌프 주커, 케이블의 경우는 CNN의 테드 터너, 인터넷의 경우는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슨 같은 인물이 등장해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본격화하기 전까지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상의 예들이 들려주는 것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상용화되고, 대중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많은 인내와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신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첨단 미디어 혁명들은 당장 그 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매장시켜 버렸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생텍쥐베리가 말한 것처럼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야” 한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무엇이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생각해볼 때, 초기 벤처기업 생태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들고 나온 벤처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할 수 밖에 없고, 그 기술과 서비스의 참신성을 사회의 대중적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지원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역할의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엔 그것이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 문화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근대화 이후 해왔던 전통적 후원자 역할에 근거해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월20일에 발표된 대통령 성명,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의 정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역할에 대한 주장이 그 역할을 뒷받침하는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냐는 논의를 잠들게 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이 설득력을 가지게 할 만한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정부가 견인하는 벤처산업을 상상할 경우, 정부가 말하는 벤처기업, 소위 1인 창조 기업의 가치가 우리가 말하는 구글, 페이스북 등의 파괴적 기술을 이끄는 시장 선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같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혁신’과 ‘창조’는 그 풍성한 논란을 떠나서, 실질적으로 대접을 높이 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그리고 그 근거는 앙리케 왕자의 신념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상, 그리고 영락제의 야심과 정화의 한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 벤처의 미래가 싸이월드의 과거와 페이스북의 과거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가?

이상의 의문이 그 성명 발표가 세간에 화제를, 그리고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의문을 불식시킬 만큼, 설득력 있는 답변을, 그리고 실질적인 정책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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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말을 적당히 잘 썼다. 이런 류의 글들도 이정도의 지적만을 할 뿐 그 이상의 결과물을 주는 글을 찾아볼 수 없다. 뭐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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